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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1. 11世 〉5. <요재공>모우당중수기(慕友堂重修記)휘여후(諱汝厚)
1. 문헌 목록 〉11. 11世 〉7. <부정공>수의부위훈련원봉사공휘각묘갈명(修義副尉訓鍊院奉事公諱珏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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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정공>학생공휘철석행록(學生公諱哲碩行錄)
學生公諱哲碩行錄 公諱哲碩字君華玉川趙氏以高麗光祿大夫檢校大將軍守門下侍中諱璋爲肇祖其孫有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最著顯焉其次子前副正虔谷先生諱瑜自淳昌移居于順天富有縣子孫仍世居爲一鄉望族累傳有諱忠溫諱鳳麟即公之祖禰也公生 嘉靖癸亥天禀魁偉忠義慷慨快爽有膽略萬曆戊子登科行禦侮將軍訓鍊院僉正任官盡職見稱於遼友逮夫壬辰島夷犯境賊勢大熾宗社幾危公有圖復之誠召募義旅大聲激勵曰衣君之衣食君之祿安敢避賊安居不赴君父之急乎即率衆仗劎赴錦山躍馬先登斬殺無數及義軍敗績欲與主將同死反而思之未復君父之讎徒死無益潰陣出班策馬急馳憤氣益礪更整餘衆相謀曰宗社蒙塵爲臣子者曷不盡忠義之誠克圖國家之危急乎更赴趙重峰義軍陣中極力斬獲累立戰功及重峰戰亡奮義盡忠詳載同義錄竟死軍中招魂葬于順天上沙面烏邊橋艮坐原子夢龍 贈通玫大夫司憲府持平后孫世居月谷 歲在庚申七月 日 瀛州 梁壬承 謹記 학생공휘철석행록(學生公諱哲碩行錄) 공의 휘는 철석이요 자는 군화(君華)며 옥천조씨인데 고려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문하시중 휘 장(璋)을 비조로 삼전하여 옥천부원군 충헌공 휘 원길(元吉)이 가장 현달하고 그 차자 전부정 건곡선생 휘 유(瑜)가 순창으로부터 부유 고을에 이거하여 자손이 대대로 살아 한 고을 망족이 되었다. 여러 번 전하여 휘 충온(忠溫) 휘 봉린(鳳麟)은 공의 조여부였다. 공이 가정(嘉靖) 계해(癸亥一五六三)년 생으로 천품이 크고 건장하며 충의 강개하여 괴걸한 담략이 있어 만력 무자(戊子) 一五八八년에 무과에 올라 어모장군 훈련원첨정을 행직하며 직책을 다하니 동료가 칭도하고 임진(壬辰) 一五九二년을 당하여 왜구가 지경을 침범하고 적세가 크게 성함에 종사가 위태해지자 공이 도복할 뜻을 가지고 의병을 모집하여 힘 있는 소리로 격려하며 말하기를, 「인군이 주신 록을 먹으면서 어찌 감히 적을 피하여 편안히 살기를 바라고 군부의 급난에 임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곧 의병을 거느리고 금산에 이르러 말을 달려 먼저 나가 무수히 참살하였으나 의병이 분패하자 주장과 함께 죽고자 하다가 군부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한갓 죽는 것은 유익함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진을 뚫고 밖으로 나와 말을 채질하여 급히 달리니 분기가 더욱 일어났다. 다시 남은 군사를 정돈하고 서로 꾀하여 말하기를 종사가 피난하였으니 신자된 자 어찌 충의의 정성을 다하여 능히 나라의 위급을 도모치 않겠는가. 다시 조중봉(趙重峯)의 진중에 다다라 힘을 다하여 적을 무찔러 여러 번 전공을 세우고 중봉이 전망함에 의리를 뽐내고 충성을 다한 사적이 동의록에 자상히 실리고 마침내 군중에서 죽어 혼을 불러 순천 상사면 도변교 간좌원(順天上沙面島邊橋艮坐原)에 장사하고 아들 몽룡(夢龍)은 증통정대부사헌부지평이요 후손이 대대로 월곡에 살고 있다. 영주(瀛州) 양임승(梁壬承)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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